1000만명이 놀러온다…'유러피언의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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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일부 시위대가 관광객에게 물총 세례를 퍼부었다는 외신을 접했다. 여름 성수기인 유럽은 또 다른 이유로 부글부글 끓고 있나 보다.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등에서도 오버 투어리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득 7년 전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보낸 한 달 살기가 떠올랐다. 인구는 100만 명인데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여행자가 찾아드는 섬, 스페인 마요르카 이야기다.
남편의 여행
2017년 8월 마요르카에 도착했다. 여행 가이드북에서도 극구 말리는 극성수기에 우린 한 달 살기를 시작했고, 출발부터 일정이 꼬이고 말았다. 예약해뒀던 한 달짜리 숙소가 섬 도착 불과 이틀 전에 일방적으로 취소된 것이다. 당시 마요르카는 관광객 급증으로 집세와 물가가 폭등하고, 주민의 삶이 파괴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관광이 도시를 죽인다(Tourism kills city)’는 과격한 문구가 도시 곳곳에 붙던 때다. 우리가 예약한 집이 미신고 숙박 단속에 걸린 모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방을 구했다. 우린 섬 최대 도시 ‘팔마 데 마요르카’(이하 ‘팔마’)에 있는 현지인의 집에 방 한 칸을 얻었다. 집주인은 바쁘다는 핑계로 늘 외출 중이었고, 우리는 브라질에서 온 가사도우미 라우라와 자주 어울렸다. 라우라는 가장 작은방에 상주하며 집안일을 했는데 “스페인에 이민 와서 가정부나 호텔 룸메이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브라질 여성이 많다”고 했다. 그는 첫날부터 브라질 사람 특유의 친근함으로 다가왔고, 급기야 그의 집에도 초대를 받았다.
라우라의 집은 멀었다. 팔마에서 기차를 타고 약 2시간 30분가량을 달렸고, 종착역 마나코르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이동해야 했다. 마요르카가 제주도보다 2배나 큰 섬이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우린 한낮에 다 돼서야 라우라가 사는 포르토크리스토에 도착했다. 마요르카 동쪽 해안에 있는 이곳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마을이다(나달 박물관도 있다!). 해안은 휴양 온 유러피언으로 북적였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호화 요트가 점점이 떠 있고, 바다를 굽어보는 절벽 위에는 부자들의 저택이 가득했다.
라우라는 후미진 해변 외곽 동네에 살았다. 그곳에서는 해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요르카의 이주 노동자와 고급 요트를 타고 휴양을 즐기는 관광객의 사이의 거리가 아득히 멀어 보였다. 화려한 옷차림의 신혼부부나 부티 나는 휴양객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것이 이질감이었는지, 부러움이었는지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돈 냄새 짙게 풍기는 해변보다 라우라의 낡은 집에서 맛본 브라질 닭고기 요리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내의 여행
마요르카는 ‘유러피언의 하와이’로 통한다. 1950년대 팔마에 처음 비행기가 닿은 이래 유럽의 관광객이 물밀듯 섬을 찾았다. 특히 독일인의 마요르카 사랑이 대단한데, 한 해 300만 명 이상이 몰려온다. ‘독일인이 즐겨 찾는 휴양지’ 따위의 앙케트에서 늘 마요르카가 1등에 오른단다.
당연하게도 버스·슈퍼 등 마요르카 어디서나 독일어가 들렸다. 부동산 안내판에도 독일어와 스페인어가 나란히 적혀 있을 정도였다. 나는 종종 여기가 스페인인지 독일인지 헷갈렸다. 해서 어느 날부터는 독일어가 들리지 않는 곳을 찾느라 애썼다.
다행히 바다와 거리가 있는 섬의 안쪽은 외지인보다 현지인이 더 많았다. 우리는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며 이 마을 저 마을을 유랑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동화 같은 언덕 마을 발데모사도 가보고, 섬의 동서쪽에 위치한 소예르 해변에도 들렀다. 발데모사의 카르투하 수도원에는 이른바 ‘쇼팽의 방’이 있었다. 폐결핵으로 고생하던 쇼팽이 이 수도원에 머물면서 ‘빗방울 전주곡’을 비롯해 수많은 명곡을 남겼단다.
순전히 배불리 먹기 위해 섬 중앙에 위치한 잉카라는 마을도 여러 번 갔다. 달팽이 요리와 빠에야 등의 스페인 음식을 양껏 즐길 수 있는 뷔페식당(13유로, 약 1만9000원)이 나의 단골집이었다.
그래도 백미는 역시 해변이었다. 팔마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쯤 거리에 있는 산타 폰사 지역의 해변이 나의 아지트였다. 산타 폰사는 가족 단위 피서객이 대부분이었는데, 비교적 조용하고 평온했다. 무엇보다 독일어로부터 해방된 게 가장 기뻤다.
8월의 마요르카는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돌았다. 쏟아지는 햇빛과 숨죽이며 대치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는데, 우리는 바다에 턱밑까지 몸을 담근 채 한낮의 시간을 보냈다. 마요르카의 눈부시게 푸른 바다와 순백의 모래 해변을 만끽하면서. 성수기 마요르카에서 인파가 덜한 해변을 찾는다면 단연 추천하는 장소다.
글·사진=김은덕·백종민 여행작가 think-thing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