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계란 1200개, 오븐 쓰면 맛없다고 프라이 다 시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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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급식실 떠나는 조리실무사
1명당 급식인원 최대 400명…적정 인원은 75명
2024년 5월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된 영동중 급식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2024년 5월, 서울 서초구 영동중학교의 급식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달궜다. 사진 속 식판에는 쌀밥과 국물(김치찌개), 반찬 한 가지(순대볶음)만이 담겨 있었다. 학부모들은 ‘교도소 밥도 저것보단 낫겠다’ ‘교육청에 민원을 넣자’고 말하며 분노했다. 하지만 후속 기사가 나오면서 학교를 향한 비난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학생 수 1천 명이 넘는 이 학교의 급식실은 조리(실무)사 정원이 9명임에도 정규 조리인력이 2명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2~3명의 대체근로자가 추가됐지만, 제대로 조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조리실무사 71%가 은퇴 앞둔 50대
영동중 조리실무사 결원 사태는 예외적인 상황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한겨레21>이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을 통해 전국 학교 급식실 조리인력 현황을 확인한 결과, 정규 조리인력 1명당 급식인원이 최대 400명대(대체근로자까지 포함하면 1명당 최대 214명)에 이르는 학교도 있는 등 대부분 학교가 적정 급식인원을 크게 상회했다.
학교급식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학교급식실 붕괴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2023년 교육공무직원 실태조사 결과(교육부, 2023년 8월)를 보면, 조리(실무)사 전체 5만8217명 가운데 4만1314명이 50대 이상으로 곧 은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혜경 의원실이 집계한 조리실무사 1인당 지역별 최대 급식인원을 보면 서울 214명, 경기 203명, 대구 195명, 부산 194명 등의 순이었다. 공공기관 조리원 1명당 평균 식수인원인 65명과 견줘보면, 조리실무사 1명이 감당하는 식수인원이 3배 이상 많은 셈이다. 다만 조리실무사에게 감독 및 지시 역할을 하는 조리사 역시 통계에 포함하면 서울 176명, 부산 170명(그래픽1 참조) 등의 순이었다.
2022년 국회 토론회에서 학교급식 조리실무사 1명당 적정 식수인원은 75명으로 논의된 바 있지만, 급식실 현실(그래픽2 참조)은 이와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 서울·부산·경기·대전·대구 등 대부분의 학교가 적정 식수인원을 크게 넘겼고, 서울의 경우 조리실무사 1명당 100명 이상의 급식인원을 담당하는 학교가 전체의 95%(1259개교)에 이르렀다.
학교급식의 붕괴
게다가 ‘식(먹을 식)수인원’이란 표현이 학교급식실 조리실무사 업무에 대한 착시효과를 주기도 한다. 조리원 1명당 200명의 식사를 담당한다는 뜻은, 200명분의 요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200명분의 식재료를 검수하고 세척하고 다듬고 조리하기, 조리 과정의 모든 다라이(대야)·수레·솥 등 닦기, 200명이 먹고 반납한 식판, 수저 등의 세척, 조리실과 식당 청소, 앞치마와 팔토시 등 착용 위생용품 세탁까지 포함한다.
교육청, 노동여건 개선 없이 “지원자 없어”
식수인원이 많으면 산업재해를 입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기름과 물을 많이 사용하는 조리실 특성상 바닥이 늘 미끄러운데, 업무 과다로 조리실 내부를 뛰어다니다보면 넘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점심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다보면 고온에 접촉해 화상을 입거나 조리도구에 절단, 베임, 찔림 등의 사고도 잦다. 경남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활동가 출신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학교급식 종사자 건강검진 결과 폐암 확진자 52명(2023년 9월 기준)이 나온 것도 식수인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폐암이 많이 발생했다니까 보통 ‘환기 시설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환기 시설도 대단히 중요하죠. 그런데 사실 (현장을 보면) 튀김이나 전 요리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니까 한 명이 계속 그 앞에 붙어 있어야 해요. 사람이 없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해야 하니까요. 교대가 안 되니 ‘조리흄’(조리 중 발생하는 미세분진) 노출 강도가 심해지죠. 인력 충원이 가장 절박한 것이고,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교육청도 사람을 뽑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뽑으려 해도(그래픽3 참조)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게 교육청의 호소다. 2024년 6월 모집한 서울시교육청 교육공무직원 신규채용에서 조리실무사 지원자는 정원을 다 채우지도 못했다. 왜일까.
“(학교급식이 발전하면서) 메뉴 가짓수가 늘었으면 배치 기준도 좋아져야 하는데, 식단은 화려해지고 인력은 부족하니까. 예를 들면, 비빔밥에 달걀 얹어주는 것도 오븐에 해도 되는데 오븐에 하면 맛없다고 하나씩 다 프라이로 하라고 해요. 그럼 (식수인원이 많으니까) 달걀을 1200개 넘게 프라이 해야 하거든. 프라이 1200개 하고 과일 1200개 깎고 하다보면 손이 다 튀어나오고 관절염이 오고. 처음에 월급 200만원 주는데, 식당으로 가는 게 낫지 학교급식실에서 일할 이유가 없는 거죠.” 13년 근무 경력을 지닌 서울의 한 조리실무사가 말했다.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신학기 학교 급식실 결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교직원 급식실, 서울·부산은 아직도…
게다가 서울은 특히 ‘교직원 급식실 별도 공간’을 운영하는 비율(그래픽4 참조)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소재 학교의 경우 조사된 1328개교 가운데 76%(1010개교)나 학생 급식실과 교직원 급식실을 따로 분리해 운영하고 있었다.
정 의원은 “과거엔 교직원만을 위한 반찬을 한두 가지라도 더 준비한다든가 교직원 급식실을 따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 지방은 그런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며 “영동중 사태 당시 학교를 방문했을 때 서울은 아직 그 문화가 남아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별도 공간을 운영하면 누군가 배식대를 따로 차리고, 세척할 것이 더 생기고, 청소할 공간이 하나 더 생긴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