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대장 푸틴, ‘풀려난 암살범’은 기다렸다…크라시코프는 누구? [특파원 리포트]
컨텐츠 정보
- 3,739 조회
- 0 추천
- 0 비추천
- 목록
본문
현지시각 1일 러시아에 도착한 바딤 크라시코프를 맞이하는 푸틴 대통령(크렘린궁 영상 캡쳐)
■ 늦은 밤, 공항 활주로까지 나가 마중한 푸틴
현지시각 1일 밤 러시아 모스크바 남서부의 브누코보 2 공항.
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러시아 특수비행대 항공기가 도착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활주로로 걸어 나와 몇 분간 기다립니다.
8명의 러시아인이 비행기에서 차례로 내려옵니다. 미국과의 수감자 교환을 통해 서방 수용시설에서 풀려난 사람들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일일이 포옹하며 맞았고, 이어진 환영식에서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당신들의 조국에 대한 충성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다시 만나서 당신들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국영 타스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수감자 교환으로 러시아로 돌아온 사람들은 "좋은 곳에서 일하게 될 것"이며 "반역자는 언제나 나쁜 결말을 맞이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 해커, 스파이, 암살자...러시아로 돌아온 수감자들은 누구?
현지시각 1일, 나토 국가에서 수감중이던 8명의 러시아인이 ‘맞교환’ 협상으로 석방돼 러시아에 도착했다(크렘린궁 사진)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의 한 공항에서 이뤄진 미국과 러시아의 수감자 맞교환으로 서방에서 풀려난 러시아인은 모두 8명, 러시아 측에서 풀려난 시람은 16명입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이들의 이력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바딤 크라시코프는 2019년 독일 베를린에서 전 체첸 사령관 칸고슈빌리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안나와 아르템 듈리체프 부부는 2022년 러시아 스파이 혐의로 슬로베니아에서 체포됐습니다.
로만 셀레즈네프는 러시아 유력 정치인의 아들로, 해커그룹을 이끌고 미국인과 조직의 은행 계좌에서 12억 달러를 훔친 혐의로 2017년 징역 27년형을 선고받았고 블라디슬라프 클류신은 미국 기업을 해킹해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로 지난해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바딤 코노시체녹은 군산복합체를 위한 기술(핵 포함)과 미국 탄약을 밀수한 혐의로 지난해 최대 30년형을 선고받았고 미하일 미쿠신은 러시아 정보기관과 혐력했다는 혐의로 2022년 노르웨이 당국에 기소됐습니다.
러시아 측에서 풀려난 인물은 모두 16명입니다.
간첩혐의로 16년 형을 선고받았던 에반 게르시코비치 미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와 미국 해병대 출신 기업 보안책임자 폴 휠런 등 미국인은 3명입니다.
또 지난 1월 대마 성분이 든 젤리를 가져온 혐의로 구금된 패트릭 셰벨 , 테러 혐의로 벨라루스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리코 크리거 등 독일인 5명도 포함됐습니다.
러시아의 야권 정치인 블라디미르 카라 무르사도 풀려났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러시아에 수감돼 있던 미국인 석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출처: 연합뉴스)
■ 독일이 '석방에 난색' 표했던 크라시코프
러시아로 돌아온 인물 가운데 러시아는 물론 서방 매체도 주목하는 인물은 바딤 크라시코프입니다.
그는 2019년 8월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국회의사당에서 불과 3km거리)에 위치한 클라이너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한 남성에게 자전거로 다가가 총을 쐈습니다.
숨진 사람은 조지아 출신의 전 체첸 반군 지휘관 칸고슈빌리였습니다. 그는 2016년부터 독일에 거주하며 망명을 신청한 상태였습니다.
대낮에 아이들도 있는 공원에서 벌어진 대담한 살인에 독일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크라시코프는 범행은 물론 러시아 정부와의 관련성을 부인했습니다. 직업도 스포츠 교사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독일 검찰은 크라시코프의 문신을 통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서 암살 등 특수 작전을 수행하는 부서에서 일한 것으로 봤고 독일 보안당국은 크라시코프가 1990년대 푸틴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을 것이며, 경호원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 했습니다.
크라시코프는 2021년 12월,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독일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것은 러시아 연방의 국가 테러 행위"라며 암살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습니다.
판결문 여러 페이지에 걸쳐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적시됐습니다. 판결문에서 푸틴 대통령은 칸고슈빌리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며 '베를린을 돌아다니는 그런 강도들이 있다'는 등의 발언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두고 "암살 시도를 광범위하게 정당화했다"고 적시했습니다.
■ 나발니 명단에 포함돼 마음 돌린 독일 ... 협상의 막전막후
크라시코프는 그간 러시아가 가장 석방을 원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2022년 대마초 소지 혐의로 러시아에 억류된 미국 여자 농구 스타 브리트니 그라이너의 석방을 위해 미국 측이 크라시코프의 석방 여부를 타진했지만 독일이 거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라이너는 미국에 수감 중이던 러시아의 거물급 무기상과 2022년 12월 맞교환이 성사됐습니다).
올들어 독일의 입장 변화가 있었는데 푸틴의 정적으로 불리던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나발니'를 교환 대상자 명단에 포함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부터입니다.
지난 2월 러시아 시베리아 감옥에서 급사한 반정부 운동가 나발니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나발니는 독극물 중독 증세로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베를린 샤리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생사의 고비를 넘겨, 독일인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인물입니다.
미국과 독일이 크라시코프를 나발니, 게르시코비치 휠런과 교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감자 교환 방안에 합의하고 러시아에 비공식 제안을 하던 지난 2월, 갑자기 나발니가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나발니의 사망으로 협상은 동력을 잃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러시아 감옥에 수감 중인 야권 정치인 블라디미르 카라 무르사의 건강 악화 등의 상황은 다시 독일을 움직였습니다.
■ "서방의 성공... 푸틴의 승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일(현지시간) 쾰른 공항에서 러시아와의 수감자 맞교환 협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4월, 독일 이민 당국은 크라시코프에 대해 러시아로 추방을 명령하고 20년간 독일 입국을 금지했습니다.
이 결정은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와 서방 간 최대 규모의 포로 교환을 위한 공식적인 초석이었다고 슈피겔은 분석했습니다.
또 이번 수감자 교환 협상은 '서방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는데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민주당은 물론, 5명의 시민을 구출한 독일 정부에게도 만족할만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청부 암살자'인 크라시코프를 기꺼이 내줬다는 점에서 '푸틴의 승리'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크라시코프의 잔혹함 범죄 사실을 고려하면 유럽에서 더 많은 청부 살인이 가능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크라시코프가 러시아 땅을 다시 밟은 이후 크렘린궁은 그의 정체를 공개했습니다. “크라시코프는 연방 보안국(FSB)의 직원이며 일부 대통령 경호원들과 함께 '알파' 그룹에서 복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