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젊어서 스스로 걸리는 치매 있다, 술이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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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세브란스병원 조한나 교수
“알코올성 치매 치료의 시작은 무조건 금주”
”알코올 의존증 많은 한국인 특히 주의해야”
조한나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치매는 하나의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 등 종류가 다양하다. 대부분 치매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뇌신경에 특정 단백질이 쌓여 발병한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심지어 스스로의 선택 때문에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알코올성 치매가 그렇다.
조한나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치매 전문가이다. 조 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치매박사’는 구독자가 3만명에 달한다. 미국에서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연구했지만, 국내에서는 알코올성 치매를 진료·연구하면서 적극적으로 그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조 교수는 “알코올 의존증이 많은 한국인이 특히 주의해야 할 치매”라며 “치료의 시작은 금주”라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알코올성 치매는 어떻게 걸리는가.
“다른 치매들은 나이가 들면서 나쁜 단백질들이 축적돼 걸린다. 하지만 알코올성 치매는 알코올 자체가 신경세포에 독성 물질로 작용해 발병한다. 독을 주입한 결과로 나타나는 치매라 나이가 들어야 걸리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변수가 아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는 더 큰 변수로 이해할 수 있다. 알코올은 크게 세 가지 경로로 뇌에 독이 된다. 먼저 신경세포를 죽인다. 또 비타민B1(티아민)의 흡수를 방해하는데, 이에 따라 뇌세포가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 여기에 알코올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뇌의 면역세포인 마이크로글리아(미세아교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해 뇌에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킨다. 이 3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알코올성 치매를 일으킨다.”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는가.
“우선 앞쪽 뇌인 전두엽이 많이 쪼그라든다. 전두엽은 판단과 충동 절제, 의욕, 동기 등에 관여한다. 이 때문에 전두엽이 줄어들면 우선 화, 짜증을 내고 술을 자제하지 못한다. 음주 외에는 식사나 목욕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도 하기 어려워진다. 또 고집이 세지거나 반대로 귀가 아주 얇아져서 남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하려고 한다. 전두엽 다음에는 소뇌가 망가진다. 소뇌는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므로, 소뇌가 망가지면 비틀거리며 걷거나 손이 계속 떨리고, 혀가 꼬여 발음이 정확히 안 된다. 마지막으로 좌·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라는 부위까지 손상되면 복합적 사고나 종합적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알코올성 치매는 이들 부위가 영구적으로 손상돼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다다른 것이다.”
–치료는 어떻게 하는가.
“술을 아무리 오래 마시더라도 금주하고 한참 뒤에 뇌 기능을 측정하면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는 보고가 많다. 이처럼 알코올성 치매는 그 어떤 치료법보다도 금주가 우선이다. 명명백백하다. 그래서 알코올 전문 정신병원에서 집중적으로 치료받는 것이 좋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 같은 정신병원이 8~10군데뿐이다. 환자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외국은 병원뿐 아니라 재활센터나 환우회도 활성화했는데, 한국은 이런 사회적 인프라도 적다. 국가 차원에서 신경 써야 한다.”
–약물 치료도 가능한가.
“우선 뇌의 손상된 기능을 채워주기 위해 티아민을 처방한다. 티아민이 부족해 걸리는 베르니케 뇌병증에 걸리면 기억력이 감퇴하고 복시(複視·1개의 물체가 2개로 보이는 현상)가 나타난다. 영구적으로 기억력을 상실할 수 있어 신경과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병이다. 알코올성 치매로 인한 뇌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이나, 뇌의 산화 스트레스 작용을 억제하는 신약이 개발 중이긴 하지만, 아직 임상시험을 제대로 통과한 약은 없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알코올성 치매를 다루지 않나.
“알코올성 치매는 알코올 중독이라고 알려진 알코올 의존증과 다르다. 알코올 의존증은 금단 증상으로 술을 끊지 못하는 상태라면, 알코올성 치매는 인지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인지 기능 장애의 일종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다만 알코올성 치매는 보통 알코올 의존증 증상이 나타나야 발병한다. 따라서 심리·행동·인지치료로 술을 끊게 만드는 데 방점을 두는 것이 정신건강의학과라면, 알코올로 인한 뇌의 변화와 인지 기능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신경과적 접근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소주 /뉴스1
–한국은 음주에 관대하다. 알코올성 치매 환자도 많나.
“한국의 알코올성 치매 환자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한국이 생각보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많은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4문항짜리 알코올 의존 간이선별검사법(CAGE 검사)과 10문항짜리 알코올 의존 자가진단(AUDIT-K)으로 검사해 보면 많은 한국인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나온다. 또 전체 치매 환자의 10~25%가 알코올성 치매와 관련됐다는 보고도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환자의 1%도 줄이기 어렵지만, 알코올성 치매 환자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보고다.”
–스스로 알코올성 치매인지 확인할 방법이 있나.
“알코올성 치매는 다른 치매와 달리 기억력보다 성격이 먼저 변한다. 자꾸 자제나 절제를 못 하는 증상이 반복되면 병원에 와서 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알코올성 치매 환자들은 술로 인한 다른 질병도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뇌에 영향을 미칠 정도면 다른 부위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우선 간의 경우 지방간이나 알코올성 간염, 간경화, 간암 순으로 빈번하게 걸린다. 그다음이 급성 췌장염인데, 만성 췌장염까지 발전하면 췌장암이 되기 쉽다. 술은 췌장암을 일으키는 위험 인자 중에서도 굉장히 위험한 인자다. 그뿐만 아니라 술이 지나가는 통로인 입·구강·식도 등이 모두 암에 걸리기 쉽다. 술이 아니라 독을 먹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