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 엄마마저 "에어컨 켜자" 폭염에 백기…블랙아웃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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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전기가 더 필요하다. 냉난방에, 자동차에, 공장에 필요한 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전기요금이 저렴한 탓에 너도나도 펑펑 쓴다. 연일 역대 최대 전력수요를 경신하지만 전기가 끊길 것이란 두려움은 없다. 가용 자원과 인력을 최대치로 활용하고 있어서지만 어디하나 삐긋하면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송배전망 확충과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미래 자원에 대한 투자와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대 최장·최악 폭염 끝나가는데..."블랙아웃 위험이 도사린다"①'뉴노멀'이 된 역대 최대 전력수요
전력난에 대비해 복도의 전등을 끄는 등 정부 부처가 자발적으로 절전 운동을 벌이는 모습. 2013.5.29. /사진=뉴스1역대 최악의 폭염과 최장기 열대야. 이제는 한반도의 '뉴노멀'이 됐다. 덩달아 전력 수요 역시 '역대 최대'를 경신 중이다. 쓰는 전기는 많고 만드는 전기는 한정돼 있는데 그 누구도 '블랙아웃'(대량 정전)을 걱정하지 않는다. 전력 관리에 대한 믿음, 위기에 대한 무감각 등이 섞여 있다.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선 필수 조건이 적잖다. 발전원 확보, 송배전망 안정화, 정비 철저 등이 전제돼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13년전인 2011년 9월15일 대정전(9·15 블랙아웃)의 위험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1일 정부부처와 전력당국에 따르면 8월 한달 동안 전력수요는 연일 새 기록을 갈아치웠다. 수치만 놓고 보면 역대 4, 7, 9위만 제외하고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이번 달 발생했다. 그만큼 무더위 속 모든 발전원이 쉬지않고 가동됐다는 의미다.
겉으로는 평온해보였지만 연간 최대 전력 수요를 비교해보면 올해 전력공급 차원에서 얼마나 위험한 해였는지 알 수 있다. 10년전인 2014년만해도 최대 전력수요는 80.1GW(기가와트)였다. 이후 매년 서서히 증가하더니 2019년(90.3GW) 90GW를 돌파했고 2022년 94.5GW에 이어 올해 97.1 GW를 기록했다.
이러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전력 과부하로 인한 시설물 자체 변압기 이상으로 정전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지난 9일 부산시 300가구 규모 아파트에서 약 9시간 동안 전기 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 정전은 아파트 자체 설비 과부하 등의 이유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아파트 측은 정전 발생 이후 긴급 복구 작업에 나서 약 9시간 만인 9일 오전 1시20분께 전력을 임시 복구해 비상발전기를 가동했다.
다행히 대규모 정전사태는 없었다. 전반적으로 전력공급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정부는 104GW 수준 전력 공급 능력을 확보했다. 원전을 중심으로 석탄,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원에 따라 가동률을 조정하고 출력률 상향, 사전 예방정비 등의 대비를 강화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에 양수까지 가동해 매년 최대 발전량을 경신했다. 원전 발전량의 경우 2021년 15만8015GWh(기가와트시)에서 지난해 18만494GWh를 기록했다. 실제 원전 이용률 또한 △2021년 74.5% △2022년 81.6% △2023년 81.8% 등으로 증가했다.
필수 예방정비 등을 제외하고 최대한 원전의 가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는 의미다.
석탄 또한 언제나 '더 탈' 준비를 했다. 갑작스런 전기 사용량 폭증에 대응할 수 있는 발전원은 석탄으로 발전 출력량을 상향을 통해 추가적 전력 공급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동서발전의 경우 전력 예비력 단계에 따라 △석탄발전 최대보증 출력 △전합 하향 조정 △수요자원(DR) △냉방기 원격제어 등을 통해 7GW 규모의 예비자원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전력수요 절정 시기를 대비해 예방정비도 서둘렀다. 한국중부발전의 경우 발전소 23기에 대한 정비 시기를 점검하고 여름철 전에 계획 정비와 예방정비를 완료했다. 발전5사는 정비 예비품을 공동 운영하며 필요 발전기에 보강 작업을 진행했다.
이같은 위기 대응 계획과 실행 덕에 한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지만 잠재적 위기가 도사린다. 발전사들이 예방정비 등을 시행하기 위해 가동을 중단하는 9월이 고비다.
지난 2011년 9월 15일 겨울을 대비해 일부 발전소가 정비에 돌입했고 갑작스런 이상기후로 무더위가 덮치자 전력 수요량이 급증했다. 이내 대학 교정의 불이 꺼지더니 스포츠 경기장은 암흑이 됐다. 병원의 전력공급도 중단됐다. 지역별 순환 정전의 시작이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2011년 9월 15일 대정전 발생했는데 (위기가) 지났다고 생각했을 때 늦더위에 (정전사태 등이) 발생 할수 있다"며 "전력 유관기간의 경각심 제고 부터 전력망 계통 보완 등 올해도 (정전 위험이 발생하지 않게)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10년간 발전량 55% 늘때 전력망 9% 증가…전력망 지원 시급②'탄탄한 전력공급' 위한 전력망
블랙아웃의 핵심은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다. 전력 수요뿐만 아니라 공급이 과다해도 발생한다. 결국 송·배전망이 수요와 공급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전력망 확충이 중요한 이유다.
1일 한국전력공사(한전)에 따르면 송·배전망의 주축인 송전선로는 2014년 3만2795C-㎞(서킷킬로미터)에서 지난해 3만5596C-㎞로 약 9%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발전설비가 9만3216㎿(메가와트)에서 14만4421㎿로 약 55%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반도체공장·데이터센터의 2030년 전력 수요가 지난해 수요의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인 가운데 전력망만은 제자리 걸음인 상황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전력 인프라는 지방에 집중된 구조다. 수급 불일치가 심각하다. 특히 태양광이 몰린 호남 지역의 계통 불안은 전력당국의 골칫거리다. 호남 지역은 최근 지역 내 전력 수요보다 많은 잉여 전력이 발전되면서 출력제어도 빈번해지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을 연결하는 전력망 확충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의미다.
정부는 호남지역의 발전력을 첨단산업, 신도시 등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총 56조5000억원 규모의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세웠다. 2022년부터 2036년까지 15년간 송전선로 길이를 1.6배 늘리고 변전소는 지난해 900개에서 2036년 1228개로 1.4배 확대한다.
문제는 전력망 건설에 대한 주민 반대가 커지면서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해안-수도권 HVDC(초고압직류송전) 건설사업은 66개월 이상 지연됐다. 북당진-신탕정 건설사업은 150개월, 신시흥-신송도 사업은 66개월 늦어졌다.
서철수 한국전력 전력그리드 부사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사업 불가처분과 관련한 한국전력공사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4.08.23. /사진=뉴시스
최근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안' 불허 결정도 전력망 적기 건설의 발목을 잡은 사례다. 동서울변전소는 경북 울진 한울원전 등 동해안 지역 발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오는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선로의 2단계 접속지점이다. 하남시가 불허하면서 동해안-수도권 HVDC 사업까지 기약 없이 지연될 위기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국가기간전력망 확충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본다. 전력망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책이 담긴 법이다.
전력망 건설 책임을 한전에서 정부로 전환하고 전력산업기반기금 등을 활용해 전력망을 건설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가전력망위원회를 설치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인·허가 절차, 토지보상, 주민지원 사업 절차를 개선해 신속하게 전력망 확충을 할 수 있게 한다.
주요국들은 이미 전력망 적기 확충을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독일은 2019년 '송전망 건설 촉진법'을 개정해 토지보상 수준을 높였다. 8주 이내에 보상 절차에 합의한 주민들에 대해 토지 보상금의 75%에 달하는 '간소화 보상금'을 추가로 지급한다. 영국은 12주 이내, 네덜란드는 6주 이내에 합의해 준 주민들에게 각각 50%와 20%의 추가 보상금을 준다.
전력망 건설 기간 단축을 위해 인허가 절차도 간소화하는 추세다. 네덜란드는 특정 규모 이상의 전력망 구축 사업의 인허가 기한을 9∼12개월 이내로 제한한다. 미국은 국가 필수 송전망 프로젝트의 인허가가 1년 이상 지연될 경우 강제 승인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한전 관계자는 "전력망이 제때 확충되지 못하면 발전 제약이 걸리게 되고 첨단산업 등에 전력 공급이 어려워진다"며 "신속한 전력망 확충을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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