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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도, 지푸라기도 없으면..." 인요한 문자에 한탄한 세브란스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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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수술 청탁' 의혹 신촌 세브란스... 새벽 5시 일어나 구미서 상경한 환자, 늘어선 셔틀버스 대기줄

▲  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모습
ⓒ 김성욱


"역시 '줄'이 있어야 되는구나 싶죠. 나는 아무리 아파도 2~3주는 기다려야 하는데…"

경북 구미에 사는 A(40대·여)씨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방문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6일 오전 10시로 예약된 백혈병 치료를 위해서다. 그는 5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왔다. 이날 진료는 2~3분 만에 끝났다. 흰색 비닐봉지 한가득 2~3개월치 약을 수령한 A씨는 낮 12시께 병원 문을 나섰다. 구미에 돌아가면 오후 4시쯤 될 거라고 했다.

A씨는 최근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의료 대란이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A씨는 5년 전 고열이 내리지 않아 구미에 있는 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혈액내과가 없어 빨리 큰 도시로 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곧장 대구 소재 병원으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병상이 없어 당장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A씨와 가족들은 결국 사설 응급차를 불러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동안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문의했지만 역시나 대기 인원이 많다고 했다.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린 끝에 와도 좋다는 답변을 받은 곳이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었다.

A씨는 신촌 세브란스에 도착하고 나서도 2~3시간을 더 기다린 뒤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구미의 응급실을 찾은 후로부터 6시간을 훌쩍 넘긴 시점이었다. 그마저도 누울 수 있는 응급실 침대가 꽉 차 안마의자 같은 곳에 앉아 대기하다 진료를 받았고, 이후엔 일반 병실에 자리가 없어 값비싼 1인실에서 공석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외래 예약을 잡으려면 통상 2~3주는 기다려야 한다.

A씨는 "만약 지금 내가 5년 전처럼 아팠으면 그냥 죽지 않았을까, 요즘 응급실 뺑뺑이 기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라고 했다.

'인요한 문자' 논란 본 세브란스 환자들의 허탈감
 

▲  국민의힘 인요한 최고위원(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이 5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다. 2024.9.5
ⓒ 연합뉴스


세브란스 병원 의사 출신으로 현재 국민의힘 의료개혁특별위 위원장이자 최고위원인 인요한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군가로부터 "부탁한 환자 지금 수술 중. 조금 늦었으면 죽을 뻔. 너무 위험해서 수술해도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야"라는 휴대폰 문자를 받고 "감사 감사"라고 답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논란이 됐다.

논란이 커지자 인 의원은 "응급 수술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정된 수술을 잘 부탁한다는 취지로 연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병원 측은 입장을 묻는 <오마이뉴스>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1번 출구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 김성욱


이날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진료가 시작된 오전 8시 30분께 신촌역 1번 출구 쪽에는 병원 셔틀버스를 타려는 환자들이 수십 명에 달해 줄이 지하철 역사 안까지 이어졌다.

A씨는 인 의원 문자 뉴스를 보고 허탈감을 느꼈다고 했다. "연줄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아무리 아파도 기다릴 걸 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만난 다른 환자들 반응도 비슷했다.

서울 중랑구에서 난소암 치료를 위해 왔다는 B(65세·여)씨는 "'빽'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 혀를 찼다. B씨는 지난 2월 '응급실 뺑뺑이'를 직접 경험했다고도 했다. B씨는 "복수에 물이 차고 빈혈이 심해 응급실에 갔는데도 의사가 없다고 안 받아주더라"라며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집에서 물만 먹고 버텨 꼬챙이처럼 말랐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긴 했는데, 항암을 다시 하다 언제 또 아플지 몰라 늘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86세 어머니의 심장병 검사를 위해 서울 은평구에서 왔다는 C(66세·남)씨는 "아픈 사람 가족 입장에서야 병원에 아는 사람 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요한 의원 같은 사람에게 부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 '지푸라기'도 없지 않냐"고 했다. 그는 의료대란 여파로 모친의 진료일이 3일 늦춰졌다고도 했다. C씨는 "이 병원에 벌써 15년째 6개월에 한번씩은 다녀가고 있는데 병원에 인력이 부족하다고 날짜가 늦춰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신경외과 진료 중인 90세 노부모를 기다리고 있던 D(71세·남)씨는 인요한 의원 논란에 "우리나라에서 높은 자리 차고 있는 사람들이야 원래 다 그런 것 아니오?"라고 냉소했다. 노부모 두분 모두 집에서 모신다는 그는 다만 지금의 응급실 붕괴를 걱정했다. D씨는 "어르신들은 밤에 하혈을 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큰 사고가 돼서 급하게 병원 갈 일이 생기는데, 요즘엔 응급실을 제대로 못 간다니 마음이 불안하다"고 했다.

'응급실 뺑뺑이' 시민 불안 계속되는데… 통계조차 없는 정부
 

▲  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모습
ⓒ 김성욱


▲  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모습
ⓒ 김성욱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정부는 사망자 등 공식 통계조차 내고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2일 "응급환자 사망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어 소위 뺑뺑이로 사망했는지 확인이 어려워 정부 통계 산출 자체가 어렵고, 산출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 피해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에는 부산 기장군의 한 공사 현장에서 추락한 70대 노동자가 병원들로부터 수용을 거부당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5일에는 광주 조선대병원 응급실로부터 불과 100미터 거리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20세 학생이 해당 병원에 여력이 없어 인근 다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 8월 4일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2세 아이가 열경련으로 쓰러졌다가 응급실 11곳으로부터 이송 거부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 7월 30일에는 서울 도봉구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진 한 기초생활수급자가 14곳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숨졌다.

소방청 통계에 의하면 의료 공백 사태가 발생한 올해 6월까지 119구급대가 환자를 4차례 이상 재이송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17건으로, 지난해(16건)와 2022년(10건)의 1년치 기록을 이미 초과했다. 2차례 재이송한 사례는 올해 상반기 총 78건으로, 지난해 1년치 기록(84건)에 근접했다.
 

▲  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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