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구글 제미나이 진격 막아낸 네이버의 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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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시장 지켜낸 네이버]①
챗GPT 등장 후 ‘코드레드’ 발령한 구글 제미나이로 반격
구글 한글 서비스 강화했지만 강고한 네이버 플랫폼 뚫지 못해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2023년 8월 24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단(DAN) 23’ 콘퍼런스 무대에 올라 키노트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2022년 11월 미국 기업 오픈AI(Open AI)가 챗GPT(Chat GPT)를 내놨다. 2022년 12월 구글은 사내에 ‘코드레드’(Code Red·심각한 위기 상황)를 발령했다. 2023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픈AI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 2월 MS 검색엔진 ‘빙’(Bing)에 챗GPT가 접목됐다. 2023년 8월 네이버는 초대규모 인공지능(Hyperscale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했다. 2023년 11월 구글은 생성형 AI(Generative AI) 검색을 한국어로 확장했다. 2024년 7월 오픈AI가 ‘서치GPT’(SearchGPT)란 자체 검색엔진을 시제품으로 공개했다. 2024년 9월 구글은 아직까진 오픈AI에 밀리지 않았고, 네이버는 일단 구글의 한국 진격을 막아냈다.
“네이버 아성 여전”
아이지에이웍스의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국내 인터넷·브라우저 애플리케이션(앱) 업종 사용자 수 점유율(중복 사용 반영)은 네이버(85.4%)·크롬(73.9%)·구글(67.1%)·다음(14.8%) 순으로 나타났다.
챗GPT가 등장하자 검색 시장의 판도가 달라지리라는 분석이 나왔다. 유려한 문장을 써내는 AI가 특히 검색 서비스 영역에서 파급력을 나타내리란 건 ‘자명한 사실’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검색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리라는 전망을 다양한 분석 기관에서 내놓기도 했다.
챗GPT 등장 후 약 1년 9개월이 지났다. 오픈AI는 그간 다양한 기술을 챗GPT에 추가로 접목하며 기능을 끌어 올렸다. 구글 역시 생성형 AI 기능을 자사 서비스에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검색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만한 변화가 나타난 셈이다.
그럼에도 국내 IT업계에선 “생성형 AI 등장과 동시에 무너질 것 같았던 네이버의 아성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챗GPT 등장과 구글의 AI 검색 기능 강화에도 네이버의 사용량 변화가 크지 않아서다. 여기에 더해 구글과 ‘직접 경쟁’에 있는 번역·지도 등의 영역에서도 비교적 시장 방어에 성공하는 성과를 써냈다.
업계에선 네이버가 연구개발(R&D) 투자를 선제적으로 진행한 기업 운영 방침 덕분에 여전히 ‘한국 최대 플랫폼 기업’이란 지위를 잃지 않았다고 본다. 실제로 네이버는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총 13조4475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R&D 비용으로 썼다.
챗GPT 등장과 구글의 대응
챗GPT는 출시 5일 만에 사용자 100만명을 끌어모으더니, 두 달 만에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억명을 돌파했다. 이는 ‘글로벌 서비스’로 불리는 플랫폼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다. MAU 1억명 돌파까지 ▲구글번역 78개월 ▲우버 70개월 ▲스포티파이 61개월 ▲인스타그램 30개월 ▲틱톡 9개월이 필요했다. 챗GPT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주마다 2억명(WAU)이 접속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시장에서 ‘검색 시대의 종말’이란 말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이유다.
‘검색 공룡’ 구글은 지난 2016년 일찍이 이세돌 9단을 바둑으로 이긴 ‘알파고’를 만들어 낼 정도로 AI 분야에서 줄곧 선두 기업으로 불려 왔다. 그런 구글이 코드레드를 선언하고 회사를 떠난 초기 구성원들까지 모아 대책을 논의했다. 챗GPT 등장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했다는 방증이다.
구글은 위기 선언 후 곧장 챗봇 ‘바드’와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를 내놨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멀티모달(Multimodal·AI가 사람처럼 다양한 정보를 복합적으로 인식하는 기술) 기능을 강화한 AI 모델 ‘제미나이’(Gemini)도 공개했다. 최근에는 검색은 물론 업무·번역 등 서비스 전반에 생성형 AI 기능을 접목하고 브랜드를 ‘제미나이’로 통일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IT업계에선 이를 두고 “오픈AI가 당장 구글의 아성을 무너뜨릴 것처럼 보였으나, 저력은 여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초기엔 다소 시장 눈높이에 맞지 않은 서비스를 선보였으나, 제미나이부턴 ‘구글다운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구글의 韓 공략과 네이버의 대응
한국은 세계 검색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구글이 힘을 쓰지 못하는 드문 국가다. ‘국가적 특색’으로 진출이 제한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구글은 국가 단위 시장 경쟁에서 대부분 우위를 점해왔다. 한국에선 얘기가 다르다. 네이버가 구글과 직접 경쟁에 있는 서비스 분야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내수용’이란 비판을 받긴 하지만 외산 기업의 시장 종속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그간 PC·인터넷 대중화와 스마트폰 확산이란 기술적 변화에 대응해 국내 시장을 지켜온 것”이라고 했다.
IT업계에선 챗GPT 등장으로 촉발된 생성형 AI 개발 경쟁이 이런 한국 시장 구도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단 우려가 나왔다. 구글은 특히 바드 출시 당시 영어 다음 서비스 언어로 한국어를 지목하기도 했다. 챗GPT에 대응해 마련한 서비스를 한국 시장에 제공하기 시작하자, 네이버의 ‘한국 최대 플랫폼’ 지위가 흔들리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견해도 자주 등장했다. 구글에 이어 오픈AI에 130억달러(약 17조4000억원)를 투자한 MS도 챗GPT를 등에 업고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이런 위기감은 더욱 고조됐다.
네이버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결집했다. AI 관련 조직을 자회사 네이버클라우드에 결집해 의사결정의 효율화를 꾀했다. 또 생성형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반인 초대규모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한국 특성에 맞춰 개발했다. 하이퍼클로바X는 초기 챗GPT에 접목된 GPT-3.5 모델보다 한국어 데이터를 6500배 더 많이 학습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후로도 성능을 한국의 문화적 특성에 맞춰 지속 고도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이를 기반으로 ▲대화형 AI 서비스 ‘클로바X’ ▲생성형 AI 검색 ‘큐:’ ▲블로그 등에서 창작자가 활용할 수 있는 생산 도구 ‘클로바 포 라이팅’ 등을 순차 공개했다. 큐:와 통합검색의 결합을 마친 뒤 현재는 모바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의 이런 변화는 구글의 진격을 다시 막아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물론 시장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올해 8월 네이버의 인터넷·브라우저 앱 분야 점유율은 85.4%로 1위다. 다만 2023년 7월부터 12월까지 집계된 점유율 평균치(86.4%)와 비교해 1%포인트(p) 하락했다. 이 기간 크롬(70.3%→73.9%)은 3.6%p, 구글 앱(64.1%→67.1%)은 3%p 상승했다. 이렇다 할 AI 기능을 선보이지 못한 포털 다음(16.9%→14.8%)은 2.1%p 감소를 보였다. 네이버의 국내 검색 시장 장악력이 다소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구글의 한국 공략 본격화 당시 나온 업계의 우려만큼 영향력을 잃은 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한 수치다. 실제로 네이버 앱의 올해 8월 MAU는 4361만2213명으로 여전히 ‘한국 최대 플랫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가 비교적 적기에 AI 시대에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으론 선제적 R&D 투자가 꼽힌다.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 ‘각 세종’ 마련이 대표적 사례다. 네이버는 생성형 AI 등장 이전부터 ‘각 세종’ 설립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 2023년 11월 본격 가동을 시작한 이곳에선 하이퍼클로바X의 고도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선제 투자로 아시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를 적기에 마련하면서 외산 플랫폼의 한국 진출에 대응할 수 있던 구조다.
세종특별자치시 집현동 부용산 부근에 위치한 네이버의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 ‘각 세종’ 전경. [사진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