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줍기까지 계획에 넣었던 오타니, 세계 최초·최고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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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목표 달성 위해 64가지 실행 계획…42세까지 매해 목표 세워
돈·향락 대신 꿈과 목표 향해 전진…보장된 성공 아닌 도전의 길 선택
수술·이적·배신의 굴레 속에서 MLB 최초 50홈런-50도루 대기록
어린 시절 오타니
[오타니 소셜 미디어 캡처. 재배포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로 오타니 쇼헤이(30·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꼽는 이유는 그의 비범한 야구 실력, 잘생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오타니의 선수 인생에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장인 정신'과 과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적 정서가 녹아있다.
오타니의 인생은 하나마키히가시 고교 재학 중에 세운 계획표 한 장으로 압축된다.
한 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8가지 세부 목표와 64가지 실행 계획이 담긴 이 계획표엔 오타니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오타니는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위해 몸만들기, 제구력, 구위, 멘털, 구속, 인간성, 운, 변화구 구사 능력을 키우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단순히 투구폼, 훈련 계획, 식단 조절,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감사', 배려', '예의', '인사하기', '휴지 줍기' 등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주변의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오타니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뒤에도 이 계획표를 착실하게 따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라운드의 쓰레기를 줍는 등 여러 선행과 루틴을 계속 실천 중이다.
오타니는 고교 때 장기 계획도 세웠다. 18세부터 42세까지 해마다 목표를 설정했다.
과거 일본 매체를 통해 공개된 계획안과 오타니가 밟아온 길을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오타니는 대부분의 목표를 달성하며 선수 인생을 살고 있다.
2015년 닛폰햄 소속이던 오타니 쇼헤이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타니가 찬사를 받는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장밋빛 결과가 보장된 쉬운 성공의 길 대신 세상을 바꾸는 도전의 길을 택했다.
고교 재학 시절 시속 160㎞ 강속구를 던지는 데 성공한 오타니는 2013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했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만화 같은 야구를 시작했다.
현대 야구에서 볼 수 없던 '투타 겸업'을 하며 미증유의 세상을 열어젖혔다.
남들보다 두 배의 훈련과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오타니는 꿈과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 5년 동안 투수로 통산 42승 15패와 평균자책점 2.52를, 타자로 타율 0.286에 홈런 48개, 166타점을 올렸다.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한 오타니는 2017년 12월 계약기간 6년, 계약금 231만 5천 달러(약 30억8천만원), 포스팅 응찰료 2천만 달러(266억원)의 헐값에 MLB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입단 계약했다.
당시 만 23세였던 오타니는 MLB 규약에 따라 2년을 기다리면 총액 2억 달러(2천660억원) 이상의 대형 계약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타니는 돈 대신 자신의 인생 계획과 목표를 따랐다.
많은 팀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비인기 팀인 에인절스를 택한 이유도 있었다.
바로 '투타 겸업을 자유롭게 지원한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오타니의 50-50 기록 호외 읽는 일본 시민
[AP=연합뉴스]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환경이 만들어지자 오타니는 거침없이 전진했다.
MLB 데뷔 시즌인 2018년 투수로 4승 2패 평균자책점 3.31, 타자로 타율 0.285, 22홈런, 61타점을 올리며 수상 기회가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을 받았다.
오타니는 야구 이외의 것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생활 논란을 일으키기는커녕 술·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는 등 수도승처럼 생활했다.
에인절스 입단 후 몇년간은 구단에서 제공한 현대차의 LF쏘나타를 통역사와 함께 타고 다녀 국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타니는 에인절스에서 야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2021년 투수와 야수로 올스타에 선정됐고, 2022년엔 투수로 규정 이닝, 타자로 규정 타석을 채웠다. 모두 MLB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작년엔 투수로 10승 5패 평균자책점 3.14, 타자로 타율 0.304, 44홈런, 95타점의 성적을 냈다.
2021년과 2023년 정규시즌에는 만장일치 최우수선수(MVP)상을 거머쥐었다. 만장일치로 2차례 MVP를 받은 것도 오타니가 최초다.
에인절스 시절 오타니
[AFP=연합뉴스]
오타니는 일본과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스포츠팬이 사랑하는 슈퍼스타가 됐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됐고, 미디어들의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2023 정규시즌 MVP 발표 당시 오타니가 안고 있었던 애완견 '데코핀'까지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였다.
2023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오타니는 폭발적인 관심 속에 다저스와 역대 프로스포츠 최고 대우의 계약(10년 총액 7억 달러)을 끌어냈다.
2024년은 오타니에게 많은 의미가 담긴 시즌이었다.
그는 지난해 9월 팔꿈치 수술을 받고 2024년엔 타자로만 활동하기로 했다.
호텔 도착한 오타니 쇼헤이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2024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에 출전하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와 아내 다나카 마미코가 15일 오후 방한 기간 머무를 서울의 한 호텔에 도착하고 있다. 2024.3.15 hwayoung7@yna.co.kr
주변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올해 2월 농구선수 출신인 다나카 마미코와 결혼했다.
아내가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던 오타니는 지난 3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MLB 개막전을 앞두고 한국 입국 길에서 다나카와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야구에만 집중하던 오타니는 서울 개막 시리즈 기간 큰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뛸 때부터 오타니와 깊은 친분을 쌓았던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가 스포츠 도박 빚을 변제하기 위해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서 약 1천700만 달러를 빼내 쓴 사실이 알려졌다.
일각에선 오타니의 불법도박 연루설이 돌기도 했다.
오타니는 미국 검찰 조사에서 사건 피해자로 결론 났지만, 신뢰하던 미즈하라의 불법행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오타니 통역사 잇페이, 불법도박·절도 의혹…다저스 해고 조치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3월 16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다저스 기자회견에서 오타니 옆에 배석한 미즈하라 잇페이. 2024.3.21 ondol@yna.co.kr
이 여파 때문인지 오타니는 개막 후 8경기 연속 홈런을 생산하지 못했다. 타율은 0.242에 그쳤다.
그러나 오타니는 자신의 계획대로 다시 우직하게 본인의 길을 걸었다.
타자 역할에 집중한 오타니는 역대 최고 수준의 투고타저 리그에서 홈런 50개와 도루 50개를 성공하며 MLB 최초 50-50 대기록을 썼다.
오타니는 새 역사를 작성한 뒤 "그동안 많은 기록을 만들어온 선배들에게 존경심이 든다"며 자신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