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재명 대선 캠프’ 꾸린 野…탄핵 점점 현실화하나 [김지현의 정치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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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낮 인천 강화군 강화풍물시장에서 강화 순무 김치를 시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강화군수 재선거에 출마한 한연희 후보 지지 유세에 나섰다. 인천=뉴시스
“11월 이재명 대표 1심이 나오기 전에, 10월에 윤석열 정부가 먼저 끝장난다.”
최근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핵심 의원은 ‘11월 민주당 위기설’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호언장담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11월 15일과 11월 25일, 열흘 간격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을 앞두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 대표에게 각각 징역 2년과 3년을 구형한 상태죠.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 다시 불거진 ‘이재명 사법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지도부 소속인 한 의원이 이렇게 자신있게 말한 겁니다.
“대통령 탄핵은 정말 쉽지 않다는 쪽으로 생각한다. 인위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검찰의 구형이 나오기 전인 지난 9월 초, 이 대표는 사석에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확실한 불법행위가 증거로 확인되지 않는 한 대통령 탄핵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본다는 취지였습니다. 한 지도부 소속 의원도 저 시기엔 “일단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거부권 행사 후 재표결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국민 여론이 자연스레 모일 것”이라며 “그 때까지 민주당은 할 수 있는 걸 다 하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이 대표가 한달 여 만인 10월 5일 인천 강화우체국 앞에서 열린 한연희 강화군수 후보 지원 유세에선 이 같이 말했습니다.
“선거를 기다릴 정도로 못될 만큼 심각하다면 도중에라도 끌어내리는 것, 이게 바로 민주주의이고 대의정치 아니겠습니까. (중략) 어린아이를 키울 때도 ‘훈육’이라는 것을 합니다. 나쁜 짓을 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고 그래도 계속하면 혼을 내야 됩니다. 징벌을 해야 됩니다. (중략) 정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여러분이 ‘안 된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말해도 안 되면 징치해야 합니다. 징치해도 안 되면 끌어내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징치’(懲治), 징계하여 다스린다는 의미인데요, ‘선거를 기다릴 정도로 못 될 만큼 심각하면 도중에라도 끌어내려야 한다’는 앞의 문장과 연결 지으면, 선거 전에 징계해 끌어내리자는 의미로 들립니다.
여권에서 즉각 “탄핵하겠다는 것이냐”라고 반발한 배경입니다. 같은 날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 나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대통령을 끌어 내리겠다’는 구호를 앞장세워서 선거의 판을 정쟁의 장으로 물들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도 “여의도 대통령 행세를 하는 이재명 대표의 탄핵 공세가 끝 모르고 폭주 중”이라고 날을 세웠고요.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국감을 ‘끝장 국감’으로 만들 것”이라며 “김건희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전방위적 압박국감을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 왼쪽은 박성준, 오른쪽은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 뉴스1이 대표가 사실상 탄핵을 언급한 것이라는 논란이 거세지자,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다음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단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어제 저도 강화 유세 현장에 있었는데, (이 대표가) 대의민주주의 일반론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했다. 맥락상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가 직접 탄핵을 얘기한 적이 없다는 거죠.
그러면서 “탄핵은 한동훈 대표 본인 고민과 생각이 그대로 입으로 나온 것 아닌가”라고 맞받아치더군요. 박 원내대표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이야기하는 걸 보니, 한 대표나 국민의힘 내부가 탄핵과 관련해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꽉 차 있는 것 아닌가”라며 “우리 당에선 일부 의원의 (탄핵) 주장이 있지만 당론으로 모은다든지 방향을 잡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도 같은 자리에서 “이 대표는 징치로 대의민주주의를 이야기했는데 한 대표는 징치를 갖고 탄핵이란 용어를 썼다”며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탄핵은 상수화될 가능성 크니 오히려 나를 따르라, 나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정치적 용어”라고 했습니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불안돈목(佛眼豚目·세상 만물이 부처의 눈에는 부처로, 돼지의 눈에는 돼지로 보인다는 뜻)’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하며 “이 대표가 민주주의의 대의를 말했는데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이 탄핵을 입에 올린다. (탄핵을) 학수고대하던 마음을 들킨 것인가”라고 역공했고요.
선을 긋긴 했지만, 이 대표 구형 이후 민주당 지도부 내 탄핵 기류가 조금씩 바뀌는 듯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당내에서도 ‘탄핵’이 점점 더 공공연히 거론되는 듯합니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시민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대통령 탄핵 관련 행사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이 대표적이죠.
9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 주최로 열린 ‘탄핵의 밤’ 행사 포스터.이 자리에서는 시민단체 회원들은 “오늘 국회에서 우리는 탄핵을 외칠 수 있게 됐다” “(우리의) 첫 관문은 윤석열 탄핵이며 ‘국정농단 요괴’ 김건희를 처벌하는 일이며 정치검사 세력 서식처, 매국 세력 본산 국민의힘을 해체하는 일” 등 수차례 탄핵을 외쳤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강 의원은 스스로 “윤석열 탄핵 발의를 준비하는 의원 모임의 ‘강득구’”라고 자신을 소개했고요. 강 의원이 언급한 이 의원 모임은 최근 야당 의원 전원에게 대통령 탄핵 발의에 앞으로 협조해달라는 취지의 친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친전을 받아 들고 솔직히 조금 난감해서 일단 덮어뒀다”고 하더군요.
‘탄핵의 밤’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당 차원과 관계없다’고 일축한 뒤 쓱 여론을 지켜봤습니다. 행사 다음 날 민주당 김윤덕 사무총장은 “당 차원에서 한 번도 (윤 대통령) 탄핵 문제에 대해 논의된 바가 없다”며“당 입장이 정리되기 전까진 탄핵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한 개별 행동이 당 차원의 입장인 것처럼 오해하는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죠.
그러더니 일주일만인 10월 4일 민주당 지도부는 ‘김건희 가족비리 및 국정농단 규명 심판본부’ 비상설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면서, 강 의원을 심판본부의 멤버로 합류시켰습니다. 심판본부장은 ‘계엄령’을 주도하던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이 맡았고요. 당 지도부의 사실상의 ‘윤허’ 아래 강 의원은 주말인 10월 5일 서울 시내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집회에도 참석해 “탄핵은 헌법에 규정돼 있다. 그리고 탄핵소추안 발의는 우리 국회의원에게 그야말로 권한이자 의무”라고 외쳤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왼쪽)이 이재명 대표와 10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해당 본부는 10월 한 달간 이어지는 국감 기간 동안 김 여사와 관련한 각종 의혹과 문제점을 파헤친다 합니다. 민주당은 국감에서 쏟아져 나올 각종 추가 의혹을 토대로 11월 김건희 특검법을 재발의하고 필요하면 국정조사도 병행한다는 방침입니다. 일종의 ‘탄핵 빌드업’인 셈입니다.
민주당은 7일엔 최고위원회의 산하에 ‘집권플랜본부’도 출범시켰습니다. 아직 윤석열 정부의 임기 반환점도 안 됐는데 사실상의 ‘이재명 대선 캠프’를 당 내에 꾸리고 선거 준비에 나선 겁니다. 집권플랜본부도 역시 김민석 최고위원이 본부장을 맡았는데요, △기획상황본부 △정책협약본부 △먹사니즘 본부 △당원주권 본부 △10만 모범당원 정권교체위원회 등 총 4본부 1위원회로 구성된다 합니다. 김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책임 있게 집권을 준비하겠다”며 “당 전체의 집권 준비를 설계하고 핵심 아이디어를 제기하는 선도체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권이 말하는 ‘11월 이재명 위기설’에 맞서 민주당이 시동거는 ‘10월 윤석열 위기설’이 먼저 터질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