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재구성]전 여친 2년간 남성 스토킹, 최루액 뿌리기도
"피해자로부터 특수폭행 당해 가한 상해…면책적 과잉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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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남성 A 씨(32)가 계단에서 피해 여성 B 씨(33) 몸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고 있었어요."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안 모 씨는 A 씨의 아래층 이웃이다. 어느 한 밤중 현관문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안 씨는 회상했다.

안 씨는 즉시 A 씨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제지했다. 그러자 A 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안 씨는 당시 A 씨가 술에 취해 화가 나 있었고 그러면서도 고개를 숙인 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안 씨에 따르면 사건 현장에는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안 씨의 눈까지 따갑게 하고 속을 메스껍게 했다. 얼마나 독했으면 사건 발생 나흘이 지나도록 현장에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안 씨는 말했다.

A 씨와 B 씨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22년 두 사람은 연인 관계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별 후에도 B 씨는 지속해서 A 씨에게 연락하고 그의 집에 찾아왔다. A 씨는 거부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던 중 B 씨는 그 해 6월27일 다짜고짜 A 씨 집에 찾아가 그를 향해 최루액이 담긴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가위를 들었다.

참다못한 A 씨는 그 일이 있고 11일 만에 B 씨 몰래 새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그러나 B 씨가 이사 간 집을 찾아내는 데에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같은 해 7월26일 B 씨는 A 씨의 새집 위층 계단에 숨어 최루액 스프레이를 들고 A 씨를 기다렸다.

자정을 넘긴 27일 0시27분쯤. A 씨가 술에 취해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B 씨는 계단을 내려와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최루액을 묻힌 자기 왼손바닥으로 A 씨 오른쪽 눈 부위를 밀었다.

A 씨는 화가 나서 한 손으로 B 씨 목을 졸랐다. 오른쪽 무릎과 허벅지로 B 씨 엉덩이 부위를 밀어서 계단 밑으로 구르게 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B 씨 목을 부여잡았다. 둘은 소리를 지르며 몸싸움을 벌였고 그렇게 안 씨에 의해 발견됐다.

안 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A 씨를 부축해 집에 데려다줬다.

B 씨는 목과 허리 상처를 입고 2주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A 씨는 상해 혐의로 이듬해 재판에 넘겨졌다.

양측은 '정당방위'와 '과잉방위'를 놓고 지난 1년여간 치열하게 법정 공방을 벌였고 1심은 마침내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3단독 김재은 판사는 지난 5월31일 A 씨의 상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A 씨)이 피해자(B 씨)로부터 스프레이를 빼앗는 등 행동을 넘어 피해자를 계단 밑으로 구르게 한 행위 등은 그 위험성 등을 고려할 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정당방위 범위를 넘어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해 지속해서 스토킹하고 있었다"며 "이 사건 당시 스프레이를 뿌린 과거 행동을 반복해 피고인에게 특수폭행을 가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의 특수폭행 이후 피고인이 정상적인 행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피고인은 최루액으로 인해 눈을 뜰 수 없어 피해자를 붙잡고 제지하는 외에 당장 자신을 보호할 만한 수단이 없었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야간에 피해자로부터 특수폭행을 당해 주변을 확인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거나 당황했다"며 "그 때문에 피해자에게 유형력을 행사해 상해를 가한 것으로 형법상 면책적 과잉방위"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