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달라”… 사선 넘는 북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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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탈북 늘어난 젊은 北여성들
게티이미지뱅크
북한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국경을 넘어 남쪽으로 오고 있다. 6일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 입국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한국으로 넘어온 북한이탈주민은 105명이다. 이 중 90.5%에 달하는 95명이 여성이다. 북한이탈주민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여성 비율이 90%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98년 12.2%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26년 만에 남녀 비중이 완전히 뒤집혔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향성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주요 배경으로는 굶어죽지 않기 위한 탈북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탈북으로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활동에 제약이 많은 북한 여성들이 당장 먹을 것을 찾아 탈출했다면 지금은 억압된 체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한국행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북한이탈여성의 삶을 추적하면 북한 체제 변화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6월 기준 한국에 체류 중인 북한이탈주민은 3만4183명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여성은 2만4631명, 남성은 9552명이다. 여성이 10명 중 7명 이상(72.1%)을 차지한다. 최근 중국과 동남아 접경지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려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북한이탈주민 15명 가운데 13명도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이탈주민의 특징으로 ‘여성’ ‘MZ세대’ ‘엘리트’를 꼽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에 방점을 찍는다.
이희영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경계를 횡단하는 여성들’에 따르면 2006~2008년 한국으로 온 북한이탈여성 대부분은 1990년대 북한 대기근 이후 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당시 북한에서는 여성이 돈을 버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그들이 한국 정착을 목표로 두만강을 건넌 것은 아니었다. 먹을 것이 있는 나라를 찾다보니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 종착지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2020년 전후로는 ‘굶주리지 않는 MZ세대 여성’들의 한국행이 본격화했다. 이 교수가 이 시기 만난 신세대 북한이탈여성 12명 중 11명은 북한에서 공장에 다니는 등 직접 경제활동을 했다고 한다. 책에 등장하는 한 20대 탈북 여성은 “북한에서 간부가 되느니 남한에서 평노동자로 돈을 버는 게 낫다”고 말했다. 남성 중심의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체제에 환멸을 느낀 여성들이 자유를 찾아 한국을 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에서 여성은 제도권 밖에 있어 탈북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외부 활동 없이 주로 가사노동만 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감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북한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소수이고 당국의 주요 통제·감시 대상은 남성이다.
북한 여성의 탈북은 통계를 작성한 1998년 이후 꾸준히 비율이 증가했다. 2002년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 중 여성 비율은 처음 50%를 넘어섰다. 이후로도 점차 늘어나 70%대를 보이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 이후 또한번 증가했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탈북 단속이 이전보다 한층 엄격해졌는데, 단속은 남성에 집중됐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국가원수가 되기 전인 2011년 2706명이던 북한이탈주민은 2014년 1397명으로 3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 기간 남성은 795명에서 305명으로 61.6% 급감한 반면 여성은 1911명에서 1092명으로 42.9% 감소했다.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 경제활동 현황’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북한이탈주민은 2008년 49.6%에서 지난해 63.4%로 증가했다. 한국 사회에서 직업을 갖고 정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북한이탈주민 정착 현황’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북한이탈주민의 생계급여 수급률은 2008년 54.8%였지만 지난해에는 22.7%로 떨어졌다.
여기엔 정부의 탈북 지원 정책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북한이탈주민의 포용과 정착 지원을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주문했고, 정부는 그 넉달 뒤인 7월 14일을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7월 14일은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법적 지위와 정착 지원 정책의 근간이 되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날이다.
탈북 지원 예산도 늘고 있다.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2025년도 통일부 예산안을 보면 윤 대통령이 광복절에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의 핵심인 북한 인권 개선과 북한이탈주민 지원 강화 등의 예산이 증액됐다. 그 가운데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예산이 808억원으로 48.2%를 차지한다. 북한이탈주민 정착기본금도 1인당 1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늘어난다.
통일부 당국자는 “탈북민 종합 보호 및 지원체계 강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 전개, 자유민주주의 통일 기반 구축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과 고용률은 높아졌지만 임금 수준은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북한이탈주민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북한이탈주민이 받은 월평균 급여는 245만7000원이었다. 그 전년에 비해 7만3000원 올랐지만 일반 임금근로자와 비교하면 55만원가량 적은 수준이다.
성별 임금 격차도 눈에 띈다. 북한이탈주민 중 남성의 월평균 임금은 일반 남성 임금근로자의 95.2% 수준인 반면 여성은 89.5%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 고용률도 남성(72.3%)보다 여성(56.6%)이 낮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북한이탈주민과 전체 임금근로자 간 격차에는 한국 사회 전반의 성별 임금 격차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