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유통 7만명, 총기 거래 채널 20여개…텔레그램은 ‘범죄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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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방조자’ 거대 플랫폼] [6]
지난달 24일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에서 체포된 후,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한 텔레그램의 실태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이용되는 텔레그램은 보안성·익명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지만, 딥페이크(AI로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같은 성범죄와 마약 거래 등에 악용되고 있다.
일러스트=김성규
7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란히 “텔레그램이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각종 범죄의 행태를 보도했다. NYT는 4개월간 1만6000개 이상의 텔레그램 채널, 320만개가 넘는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를 전했다. 22개 이상의 마약 거래 채널을 발견했고, 불법 무기 거래도 찾아냈다. WSJ는 개인·기업의 금융 계좌가 불법 거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텔레그램은 범죄, 허위 정보, 아동 성 착취물, 테러, 인종차별적 선동 등 전 세계의 시궁창(sewer)이 되고 있다”며 “무국적 조직처럼 운영되는 텔레그램은 오랫동안 법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 왔지만, 많은 국가에서 텔레그램에 대한 인내심이 점점 바닥나고 있다”고 했다.
“신원 도용범, 소아성애자 집단, 마약 밀매범에게 텔레그램은 쇼 윈도다. 이곳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가상화폐로 거래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 개인 금융 계좌와 음란물, 마약이 거래되는 텔레그램 채널의 실태를 고발했다. 한 채널은 일반인들의 사진과 신분증 등을 샘플로 올려놓은 뒤 ‘구입은 사적 채널에서 가능합니다. VIP 클럽에 가입하라’고 광고한다. 개별 접촉으로 거래가 성사되면,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금은 주로 가상화폐로 치러진다. 이렇게 일반인의 개인 정보를 판매하는 채널이 텔레그램에 수천개 있다. ‘뱅크스토어온라인’이라는 채널은 60개 이상의 은행과 가상화폐 거래소의 계좌를 판매하고 있는데, 개인 계좌는 80달러(약 10만7000원), 기업 계좌는 1800달러(약 240만원)에 거래된다.
◇불법 상품 진열대가 된 텔레그램
이전에는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으로만 접속되는 비밀 사이트)이 이 같은 기능을 해왔다. 이제는 텔레그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외신은 “다크웹은 속도가 느리고 불편하지만, 텔레그램은 빠르고 바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쉽다”며 “이런 기능성이 텔레그램을 개인 정보와 아동 성 착취물의 시장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다크웹의 익명성과 일반 앱의 편의성을 결합해 범죄 거래가 쉽게 이뤄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텔레그램이 테러·혐오·가짜 정보의 온상이 된 것은 ‘채널’과 ‘수퍼그룹’이라는 독특한 기능 때문이다. 텔레그램의 ‘채널’은 일반 대화방과 달리 최대 20만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다른 메시지 앱의 대화방은 최대 수용 인원이 많아도 수천명 수준으로 제한돼 있는 것과 다르다. 또 ‘채널’은 관리자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메시지 크기는 2기가바이트로 일반 대화방(1.5기가바이트)에 비해 크다. NYT는 “텔레그램은 당초 애플의 아이메시지나 와츠앱처럼 메시지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이 같은 채널 기능 때문에 특정 지도자나 기관이 메시지를 한 번에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됐다”고 했다. 이후 추가된 ‘수퍼그룹’ 기능은 관리자가 채팅방을 폭파하면 모든 사용자에게서 모든 내용이 삭제된다. 범죄 집단이나 극단주의자들이 활동한 이후 증거를 없애는 데 활용된다.
◇정규직 60명, 수사 협조 안 해
텔레그램 운영진은 앱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하다시피 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전 세계 9억명이 사용하는 이 앱을 담당하는 정규직은 고작 60명으로 알려졌다. 앱 관리도 계약직 신분의 수백명에 불과하다.
직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된 관리가 안 된다. 지난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당시, 공격 개시 2시간 30분 만에 하마스는 참혹한 전쟁 영상을 텔레그램을 통해 대거 유포했다. NYT는 전쟁이 시작되고 72시간 동안 관련 영상은 700번 게시됐고 5400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는 하마스와 관련된 계정은 물론, 하마스에 공개적으로 동조하는 게시물도 차단하며 대응했다.
수사기관 협조에도 미온적이다. 독일의 스벤야 마이닝하우스 검사는 “다른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사법 기관과 각종 협력을 하고 있지만 텔레그램에서는 전혀 협조를 받지 못했다”며 “단 한 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은 지난 11년 동안 200여 차례 경찰의 수사 자료 요청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전직 직원들은 NYT에 “정부 기관의 문의에 사용되는 이메일 ‘받은 편지함’은 거의 확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텔레그램 상의 범죄 단속을 위해 각국 수사기관은 위장수사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뉴욕시경은 텔레그램에서 불법 총기물을 판매하는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그에게 직접 권총, 돌격 소총 등을 구입했다.
☞텔레그램
러시아 출신의 파벨 두로프, 니콜라이 두로프 형제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013년 8월에 개발해 출시한 메시지 앱. 설립 초기 주로 암호화폐 커뮤니티로 사용돼 오다, 보안에 강력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강력한 보안 때문에 마약과 무기 거래, 음란물 유포 등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이용자는 9억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