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명세' 프레임에 사모펀드 음모론까지…커지는 금투세 논란
컨텐츠 정보
- 5,824 조회
- 0 추천
- 0 비추천
- 목록
본문
국민의힘 금투세 여론전에 민주당 '갈팡질팡'
내년 시행이 예정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연말로 다가가면서 정치권 최대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금투세가 내년에 시행되면 국내 증시가 급락한다며 '금투세는 재명세'라는 프레임으로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수세에 몰린 더불어민주당은 내부에서 의원들끼리 금투세 시행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개인투자자들은 금투세 시행으로 증시가 급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사모펀드에 가입한 부자들이 금투세로 절세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이 한층 거세졌다. 증시 폭락 가능성, 사모펀드 특혜 및 배후론 등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모두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핵심 주장들의 타당성을 살펴봤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회담을 마치고 로텐더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금투세로 증시 폭락한다?
금투세가 시행되면 주식과 채권, 펀드, 파생상품에 투자해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3억원 미만은 22%, 3억원 초과분은 27.5%의 세금이 부과된다. 국내 상장주식이나 공모주식형 펀드 등의 매매를 통해 얻는 양도소득에는 5000만원까지 기본공제가 적용되며, 그 밖의 해외주식·채권·파생상품 등의 양도소득에 대해서는 250만원까지 기본공제가 적용된다.
금투세 반대론자들은 큰손들의 이탈에 따른 국내 증시 폭락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은 금투세 대상자가 전체 주식 투자자 1400만 명의 1%인 15만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움직이는 최소 150조원 규모의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경우 개미투자자의 피해는 자명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금투세 반대론자들이 대표적 예로 드는 사례는 대만 증시다. 실제로 대만 정부는 1988년 9월 상장주식 매매차익에 대해 최대 50%의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이득세를 1989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에 대만 가권지수(TWSE)는 한 달 동안 8789에서 5615로 36% 급락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공포 마케팅'이라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달리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지 않은 국가라 대만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2013년 5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행한 '소액주주 주식양도소득세 도입방안 및 세수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의 부유층은 실명 대신 금융중개기관 계정을 통해 차명으로 거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도세 부과로 투자자들의 신원과 자산이 노출되기에 대만의 자본이득세 도입은 투자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제도 시행 3개월 전에 정책이 예고되는 긴급성 등의 이유로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자본이득세 도입으로 대만 증시에서 투자자들이 영구 이탈했는지도 불명확하다. 1989년 1월 자본이득세가 시행된 이후부터는 정작 대만 증시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대만 가권지수는 그해 1만을 넘기도 했고 1989년 말 9624로 마감하며 자본이득세 도입 발표 전보다 오히려 높았다.
대만은 1990년 자본이득세를 폐지했는데, 폐지 이후 대만 증시는 오히려 그해 9월 2705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대만 증시가 자본이득세 시행 후 반등하고 자본이득세 폐지 후 추락한 사실은 금투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르거나 말하지 않는 내용들이다.
일본의 경우는 금투세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다. 일본은 증권거래세만 거두다가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단계적으로 금투세에 해당하는 양도소득세를 도입했다. 이후 9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증권거래세를 인하해 1999년부터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도입에 따른 증시 급변동은 없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회원들이 5월30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금투세는 글로벌 스탠더드?
금투세 찬성론의 주장대로 상장주식 매매차익 비과세는 자본주의 원칙을 고려하면 기형적 세제에 가깝다. 영국 등 서구권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에서 '스탠더드'는 자산 양도에 따른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20% 수준을 과세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호주 등 대다수 선진국 증시에서는 1년 이상 보유한 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해 평균 20% 전후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내 상장주식만 비과세다. 비상장주식, 해외주식, 부동산 등 각종 자산의 매매차익에 따른 양도소득에 대해서는 과세하고 있다.
금투세 폐지론에도 역시 나름의 근거가 있다. 우리나라 증시가 선진국 시스템에 편입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비판과 국내 상장기업들의 주주 가치 외면에 대한 징벌적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금투세를 시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론이다. 이른바 '금투세는 고속도로에 포장이 안 되어 있는데 통행세를 걷겠다는 이야기'라는 비유다. 실제로 중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처럼 매매차익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나라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내 대표적 금투세 반대론자인 이소영 의원은 "수익을 내기 매우 어려운 한국 주식시장을 고려하면 국내 증시는 기초체력을 다지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개혁방안을 우선 처리하고 금투세 도입을 미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행이 예고된 금투세 과세방식에 허점이 많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금투세 시행 시 본인이 지정한 1개 기본계좌 외 다른 계좌에서 발생한 소득은 6월과 12월 두 차례 무조건 원천징수되고 부양가족이 100만원 이상의 금융투자소득을 얻으면 피부양자인 근로소득자가 연말정산을 할 때 부양가족 인적공제를 받을 수 없다. 여기에 건보료 산정 기준이 되는 소득월액에 금융투자소득을 포함하게 되면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금투세 찬성론자들조차도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왼쪽 세 번째)가 8월22일 국회에서 열린 ‘국내 자본시장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정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투세 강행엔 사모펀드가 배후?
최근에는 금투세 도입으로 사모펀드에 가입한 부자들이나 정치인들이 감세 혜택을 받기에 사모펀드와 친분이 깊은 정치인들이 금투세 강행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의혹도 확산하고 있다. 금투세 도입으로 사모펀드 가입자들이 수혜를 본다는 논란은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현재 사모펀드 등 집합투자기구 투자자들은 배당에 해당하는 분배금뿐만 아니라 매매를 통해 얻는 수익이 모두 배당소득으로 분류되고 있다. 배당 및 이자소득이 연간 2000만원을 넘으면 금융종합과세 대상이 되고 사업소득,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과 합산해 소득 구간에 따라 최고 49.5%의 세율이 적용된다. 국내 상장주식이 아닌 다른 분야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분배금, 환매, 양도 등 사모펀드를 통해 얻는 수익이 연간 2000만원이 넘는다면 금융종합과세 대상인 것이다.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국내 사모펀드 대부분은 국내 상장주식이 아닌 다른 자산에 투자한다. 국내 사모펀드 630조원 가운데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는 약 20조원에 불과하다.
사모펀드는 최소 투자금이 3억원이고 가입자들 대부분이 고액연봉자다. 현재 사모펀드 가입자들은 분배금을 받거나 환매, 양도 시 금융종합과세 대상자로서 최상위 수준의 세율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다.
금투세가 시행되면 사모펀드 투자자들은 만기 전 환매나 양도를 통해 이익을 실현한다면 최대 49.5%에 달하는 금융종합과세 대신 3억원 미만은 22%, 3억원 초과분은 27.5%라는 별도의 분류과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 사모펀드 가입자들로서는 금투세 도입으로 현행 대비 부과되는 세금을 최대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는 루트가 열리는 셈이다.
부자 감세라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사모펀드 투자소득을 배당소득세로 분류해 2000만원 이상일 경우 종합금융과세 대상으로 분류하는 현행 체계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반론도 일리가 있다. 외국의 경우 배당과 이자소득을 다른 체계로 분류해 배당은 금투세를, 이자소득은 금융세를 부과하고 이자소득에만 누진세를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으로 보면 사모펀드 감세가 아니라 정상화다.
이 역시 우리나라의 다른 세금과 종합적으로 보면 관점은 달라질 수 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부동산 등에 대한 보유세가 5~10분의 1 수준이고 1가구 1주택 부동산의 경우 양도소득세 기본공제액이 12억원에 달한다. 반면 양도소득세는 타 선진국과 달리 금액에 따라 6.6~49.5%라는 가파른 누진 구조를 가지고 있고 상속 및 증여세율 역시 비슷한 누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생을 사는 동안 외국보다 자산에 대해 세금을 적게 내지만 양도나 사망 시 한꺼번에 세금을 몰아서 내는 구조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에 속한다. 이런 세금 체계에서 상속세 인하와 금투세 도입을 통한 사모펀드 감세는 글로벌 스탠더드라 하더라도 명백히 자산가들에 대한 특혜로 볼 수 있다.
다만 금투세를 밀어붙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의 배후에 사모펀드가 있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는 드러난 증거가 없다.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가 사모펀드에 투자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는 사모펀드 가입 내역을 따로 공개하지 않고 기타 금융자산으로 분류하고 있어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