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도 과학이다] ‘자전거의 나라’ 프랑스 올림픽…사이클도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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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인기 경기 ‘투르 드 프랑스’ 개최국
바람 저항 해법 찾기 위해 풍동 훈련
우주 장비에 쓰는 탄소섬유로 무게 줄여
지난 2021년 일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성 MTB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욜란드 네프 선수. 올해 올림픽이 열리는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전거 대회 '투르 드 프랑스'를 주최하는 곳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사이클 종목에 대한 관심이 크다./AP 연합뉴스
매년 프랑스에서 열리는’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이클 대회다. 1·2차 세계 대전 기간을 제외하면 1903년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개최됐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주를 따라 파리 시내 곳곳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단일 종목 경기 중 가장 많은 관중이 관람한다.
프랑스 파리올림픽이 27일 개막했다. ‘자전거의 나라’ 프랑스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사이클은 이번 올림픽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지는 종목이지만, 전 세계의 이목은 파리올림픽 사이클 경기에 쏠리고 있다.
사이클 경기는 크게 도로, 트랙, MTB(산악자전거), BMX(자전거 묘기) 등 네 종목으로 나뉜다. BMX를 제외한 도로, 트랙, MTB는 지정된 경기장에서 속도를 겨루는 종목이다. BMX는 마치 체조나 다이빙처럼 고난이도의 기술을 선보이는 종목이다. 다양한 지형에서 공중 회전하며 연기를 펼쳐 점수를 받는 방식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BMX 레이싱이 처음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며,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는 프리스타일이 공식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종목마다 속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시속 50㎞에 달한다. 이 때문에 사이클은 바람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선수와 코치진은 물론 자전거 제조사들도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항공우주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기 저항을 줄이는 기술이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대에 있는 풍동에서 사이클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 풍동은 공기역학 실험을 하기 위한 시설로, 바람 저항을 줄이기 위한 자세, 팀 진형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에인트호번대
사이클이 공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은 과거부터 잘 알려져 있다. 중세 이탈리아의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메모 ‘코텍스 아틀란티쿠스’에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바람이 부는 곳에 정지해 있는 사람은 같은 수준의 힘을 받는다”고 적혀 있다. 이후 이는 ‘공기역학적 상호성’ 원리로 불리며 풍동(風洞) 실험의 기초가 되고 있다.
풍동 장치는 공기역학 실험을 위해 특별히 만든 공간이다. 인위적으로 강한 바람을 만들어 마치 물체가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와 같은 현상을 재현할 수 있다. 가령 비행기에 작용하는 공기 저항을 측정할 때 실제 비행기를 움직일 필요 없이 풍동에서 강한 바람을 만들면 정지 상태에서도 같은 효과를 낸다.
자전거 선수들은 풍동에서 훈련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대의 풍동이다. 에인트호번대는 27m 길이의 풍동을 만들고 사이클 선수들을 위한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파비오 말리지아 에인트호번대 교수는 “개별 선수나 사이클 팀을 위한 공기역학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며 “선수들의 자세가 공기 저항에 미치는 영향과 팀 진형에 따른 공기의 흐름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의 모양을 개선해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방법도 찾고 있다. 자전거의 형태도 종목마다 세분화된다. 1980년대 후반에는 자전거의 몸통 골격을 이루는 프레임에 ‘물방울 모양’ 프레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물방울 모양 프레임은 전체적으로 원형에 가깝지만 앞쪽은 두껍고 뒤쪽으로 갈수록 얇아져 단면이 물방울을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물방울 프레임은 마치 비행기 날개의 단면처럼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자전거를 통과한 공기가 난기류를 만드는 비율을 최소화해 저항을 낮춘다. 실험에서 선수가 물방울 모양 프레임 자전거를 타고 시속 40㎞로 달렸을 때 산소 소비량이 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표팀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사이클 도로 종목에서 물방울 프레임 자전거를 처음 사용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은 사이클 종목에서 4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지금은 빠른 속도가 필요한 도로, 트랙 종목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물방울 모양 프레임을 기반으로 공기 저항을 더 줄이는 다양한 디자인의 자전거가 개발됐다.
2021년 일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MTB 경기 장면. 거친 산악 지형을 달려야 하는 이 종목에서는 탄소섬유의 충격 흡수 능력이 빛을 발한다. 탄소섬유는 항공우주산업에서도 항공기, 로켓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후보 소재로 주목 받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자전거의 소재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주로 단단한 철제(스틸) 프레임이나 알루미늄 합금 프레임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탄소섬유 프레임이 주로 사용된다. 철보다 무게는 가벼우면서도 강도는 더 높기 때문이다. 무게가 속도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경기용 사이클을 만들 때 효과가 크다.
초고강도 탄소섬유는 올림픽 사이클 경기용 자전거에 사용된다. 소재가 워낙 비싸 자전거 한 대 가격이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이다. 탄소섬유의 장점은 거친 지형을 달리는 MTB 종목 자전거에서도 두드러진다. 탄소섬유는 충격 흡수 능력이 뛰어나 선수들의 피로도가 쌓이지 않도록 돕는다.
탄소섬유는 최근 우주 분야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탄소섬유를 사용하면 금속 소재보다 무게를 30% 줄일 수 있다. 탄소섬유는 이미 항공기를 만드는 데 들어간다. 우주 분야도 마찬가지다. 다만 탄소섬유는 얇은 층을 쌓아 만드는 만큼 특정 방향에서 작용하는 충격에는 취약하다. 어떤 공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강도와 안정성에 큰 차이가 나타난다.
경기용 자전거가 첨단 기술의 집약체가 되면서 기술 도핑에 대한 우려도 있다. 자전거에 금지된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다. 자전거 내부에 작은 모터를 설치해 페달을 밟지 않고도 바퀴가 굴러가게 개조한 사례가 실제 대회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세계사이클연맹(UCI)은 프랑스 원자력·대체에너지위원회와 협력해 고해상도 자력계측기로 숨겨진 모터의 신호를 감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